[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 예언자의 소명] / 릭 조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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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소명/ Rick Joyner

 

 

지난 몇 년 동안 예언자 사역은 중요한 것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비록 선지자들에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은사가 주어졌지만 교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메세지를 듣도록 해주어야 할 이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재빨리 그 빈틈을 채우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통계 자료는 지금 심령술사들에게 전화를 거는 기독교인들의 수입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분명한 위반이며 기본적 분별력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음식을 끊으면 그는 독약을 게걸스럽게 먹을 것이다” 라는 격언이 사실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마귀가 심령술사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예언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그리고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위임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은 이것들을 잘 감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들을 겁내고 있습니다.

이런 반응들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주님이 성령을 통해 그분의 교회에 주신 중요한 은사들을 무시하기로 선택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성숙한 예언자들은 대개 규모가 큰 전략적 예언들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예언들이 교회에 넘쳐나야 합니다.

예언은 예언자들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예언자의 소명은 교회로 하여금 주님의 음성을 알도록 만들고 교회가 예언적 은사들 속에서 사용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판단을 내릴만한 적절한 성경적 기초를 갖춘 목회자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사역을 풀어 놓지 않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들은, 

예언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그 어던 문제보다도 아주 빠른 속도로 더 비싸고 파괴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모든 출산은 고통스럽고 성가신 일입니다.

그러나 태어난 아기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방문했던 거의 모든 회중들에게 있어서 나는 예언의 오용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자들을 적어도 두세 명씩을 만났습니다.

또한 때로는 목사님에 의해 상처를 입은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목회 사역을 교회 밖으로 내던져 버립니까? 물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언자 사역도 내던져 버릴 수 없습니다.

예언자 사역은 교회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주님께서 이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예언적 은사를 사모하라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은사는 다른 모든 은사들이 풀려나오는 것을 돕고 교회가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모든 관계의 질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질에 의해 판단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와의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고 그것은 우리와의 대화를 필요로 합니다.

예언은 그분이 우리와 대화하실 수 있는 일차적인 방법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건전한 교리를 확립하기 위해 주신 성경을 대신할 의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성령과 우리의 삶속에서의 예언의 은사를 대체하기 위해 성경이 주어진 것도 아닙니다.

 이 사역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계속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 릭 조이너 /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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